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르난 코르테스 (문단 편집) === 아메리카로 === 1504년 코르테스는 산루카르 데 바라메다에서 알론소 퀸테로(Alonso Quintero)[* 퀸테로는 개인적인 부를 챙기고자 상관들을 통수치고, 일정보다 먼저 신대륙으로 건너갔는데, 코르테스의 향후 행적은 이것을 보고 배운 것 같다.] 선장의 배를 타고 출발하여 산토도밍고에 상륙했다. 오반도는 코르테스를 아수아 시의 서기로 임명했고, 코르테스는 그곳에서 6년간 서기로 근무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코르테스는 이곳에서 집, 건축용 부지, 경작지를 보유하게 되었고 큰 수입을 얻는 등 부유해졌다. 1511년 콜럼버스의 아들인 디에고 콜론 제독이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 쿠엘라르|디에고 벨라스케스 데쿠엘라르]]에게 쿠바 정복과 통치 임무를 맡겼는데 코르테스는 300명의 쿠바 원정대에 포함되었다. 스티븐 메리맨 등은 코르테스가 쿠바 원정에서 큰 공을 세웠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증언이 없는데다가 스페인의 쿠바 정복은 쿠바 원주민들로부터 별 저항을 받지 않았으므로 대단한 업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코르테스가 쿠바에서 얻은 경험으로 아즈텍을 정복했다는 일부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도 코르테스가 쿠바에서 맡은 임무는 행정직으로, 페르난디나 섬(현재 쿠바)에 건설된 바라코아 시의 알 칼데로 일했다. 코르테스는 이곳에서 관리로서의 성공은 물론,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어냈고 목장과 금광 경영을 통해 유복한 삶을 살았다. 코르테스는 벨라스케스 총독의 처제와 내연관계가 되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벨라스케스는 코르테스에게 처제를 책임지라며 결혼을 강제했다. 그러던 중 1517년 쿠바에서 페르난데스 데코르도바(Francisco Hernández de Córdoba)라는 사람이 [[노예]] 수급을 위해 탐험하던 중 [[유카탄 반도]]를 발견하는 일이 있었고, 그 섬[* 당시 [[스페인인]]들은 유카탄 반도를 섬으로 알았고, 때문에 코르테스는 보고서에서 유카탄 섬으로 보고했다.]의 참포톤(Champotón)이란 마을에 상륙했다. 하지만 원주민의 야습으로 26명의 사람들이 죽고 상당수가 부상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리고 탐험대의 수장인 페르난데스도 간신히 살아서 페르난디나 섬(쿠바)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서 원주민들에게 황금이 많다는 보고를 올렸다. 당시 신대륙을 담당하던 사람은 인도[* 신대륙을 발견할 때 [[스페인]]과 [[콜럼버스]]는 여기를 [[인도]]로 알았다.] 부왕(Virrey de las Indias)의 대행[* 당시 인도 부왕은 콜럼버스의 아들인 디에고 콜론(Diego Colón)이었다.]이었던 디에고 벨라스케스 데쿠엘라르(Diego Velázquez de Cuéllar)였는데 이 보고를 들은 디에고는 유카탄 반도를 탐험하기로 마음먹고 후안 데그리할바(Juan de Grijalva)를 탐험대장으로 삼아 탐험대를 조직했다. 그후, 후안의 탐험대는 탐험에서 얻은 보물을 1척의 배에 실어 페르난디나 섬으로 보내고, 나머지는 계속 유카탄 인근을 탐험했다. 도착한 보물을 본 디에고는 (코르테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크게 실망하고 이번에는 탐험중이라 돌아오지 않는 후안 데그리할바를 찾는다는 구실로 다시 탐험대를 계획했다.[* 출처:에르난 코르테스, 《코르테스의 멕시코 제국 정복기》, 1장 첫 번째 보고서, 앙헬 고메스 편집, 김원중 번역.] 그리고 이 제3차 탐험대를 꾸리는 과정에서 (코르테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산티아고의 알 단테를 맡고 있었던 코르테스와 접촉했는데 당시 코르테스는 나비오 선박 3척과 상당량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고, 때문에 탐험대 자금의 2/3를 코르테스가 지원하여 탐험대를 편성했다.[* 이는 코르테스가 주장한 것이다.] 이후 1518년 10월 코르테스는 디에고에 의해 원정대장[* 재미있는 사실은 코르테스가 그의 보고서에 자신을 폐하의 원정대장으로 자칭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냥 이름만 쓰거나 총독을 자칭했는데, 사실 코르테스는 국왕 [[카를로스 1세]]로부터 정식으로 임명받지 않았다. 그래서 '''엄밀히 따지면 항명&반란이었다'''.]에 임명되어 원주민들과 물건을 거래할 권한만을 가진 채 유카탄으로 떠났다. 사실 벨라스케스가 코르테스를 대장으로 임명한 것은 코르테스의 충성심이 확고해 보였기 때문인데 이 시기 코르테스는 노골적으로 벨라스케스의 요구를 한참 넘어, [[식민지]]를 건설하고 신대륙을 정복할 야심을 품고 있었다. 이에 코르테스의 정적들은 벨라스케스에게 로비를 하여 그에게서 코르테스의 대장 임명 취소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코르테스는 벨라스케스가 내린 출항 중지를 씹고 1519년 2월 10일 600명의 [[스페인인]], 300명의 안티야스 원주민, 12필의 말, 10문의 대포를 실은 10척의 배와 함께 유카탄 탐험에 나섰다. 이는 명백한 항명이었다. 아메리카 본토에 상륙한 코르테스는 상륙 직후 [[프란치스코회]] [[수도자]]였던 게로니모 데아귈라르를 구조했다. 아귈라르는 선박 침몰로 떠내려왔다가 마야인들의 노예가 되었는데, 코르테스의 상륙 직전에 탈출한 몸이었다. 신대륙을 정복해 황금을 열심히 강탈하려는 야망을 품은 코르테스는 (원주민 입장에서는 당연하게도) 영역을 침범당했다고 생각한 원주민들과 성대한 전투를 벌이는 것으로 멕시코 정복사의 첫 단원을 시작하면서, 협상이 가능한 부족에게서는 황금을 뜯어내고, 아닌 부족은 그냥 무력으로 굴복시킨 다음 황금을 뜯어내는 방식으로 오로지 황금을 찾아 유카탄 반도 근처를 헤집고 다녔다. 이 와중에 포톤찬에 자리잡은 마야 계열 부족에서 [[말린체]]를 얻게 되었다. 아귈라르는 [[스페인어]]와 마야어를 알았고, 말린체는 마야어와 나우아틀어를 알았기에 이후 코르테스 원정대는 "코르테스 ↔ 아귈라르 ↔ 말린체 등 마야인 ↔ 멕시코 원주민"의 의사소통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의외겠지만, 이 탐욕스러운 이방인들을 중앙아메리카 근방의 모든 부족들이 적대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아즈텍 제국|아즈텍]]에 [[인신공양]]을 위한 가축 취급을 받던 약소 부족들은 (이유야 어쨌건) 증오스러운 아즈텍 부족들을 탈탈 털어버리는 콩키스타도르들에게 경외감을 느끼며 금과 각종 자원[* 그중에는 여자들도 있었다. [[말린체]] 역시 이런 식으로 얻었다.]을 제공하고 동맹을 맺을 것을 요청했으며, 코르테스는 이 동맹을 존중할 것을 맹세하면서 동맹 부족들로부터 이런저런 정보를 획득했다. 이때 이전에 표류해와 원주민들 사이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스페인인 선원들과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황금으로 가득한 제국'인 아즈텍에 대한 이야기가 코르테스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고작 수백 명을 이끄는 안달루시아 촌뜨기는 인구 수백만 명에 수만 명의 군대를 가진 대제국을 털어서 황금을 잔뜩 뜯어낸다는 --미친-- 발상을 하고 말았다.''' 코르테스는 아즈텍(금)을 찾아 열심히 서진을 시작하게 되었고, 진군 도중에 시비를 걸어오는 부족들은 전부 다 때려잡았다. 다만 흔히 오해되는 것과 같이, 숲 속에서 움직이는 인간 형상은 모조리 과녁으로 간주하며 피로 물든 행군을 해나간 건 아니었으며, 가능하면 협상을 시도하려고 했다. 마주치는 부족마다 족족 몰살한 다음 약탈을 수행하면서 진군하기에는 코르테스가 지닌 인적 자원은 너무 적었고, 코르테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코르테스와 동맹을 맺은 부족들은 아즈텍에 대항하는 부족들에게 코르테스의 진군에 협력하라는 전언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아즈텍 동맹 부족들 중에서도 코르테스에 협력하는 부족들이 많았다. 가령 아즈텍의 동맹이었으나 그 지배를 환멸하던 한 부족장인 치코메코아틀은 코르테스를 환대하며 그가 [[멕시코]] 최초의 [[스페인]] [[식민지]]인 [[베라크루스(멕시코)|베라크루스]]를 세우는 걸 도와주었다.[* 마을을 굳이 조성한 이유는, 나중에 카를로스 1세를 알현할 때 쿠바 총독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명령에 불복종한 것에 대한 변명으로 '왕께 영토를 바치려고 했습니다.'라고 둘러대기 위해서였다. 나중엔 베라크루스 따윈 어떻게 되도 상관없는 수준으로 광할한 영토를 갖다 바치게 되지만(...).] [[파일:external/oldcivilizations.files.wordpress.com/mc3a9xico-tenochtitlan3.jpg|w=500&h=320]] 한편 스페인 정복자들에 대한 소식은 수도 [[테노치티틀란]]에 있는 [[틀라토아니|아즈텍의 황제]]('''우에이 틀라토아니''') [[몬테수마 2세]]에게도 전해졌다. 사실 몬테수마 2세는 [[히스파니올라]]와 [[쿠바]] 섬의 학살로부터 도망쳐 온 원주민들을 통해 이 범상치 않은 이방인들에 대한 소식을 전해들은 후였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장차 제국에 위협이 되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직감했는지 몬테수마 2세는 코르테스가 도착하기 이전부터 이미 제국 각지로 첩보원들을 보내 이들의 동향을 감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난생 처음 보는 철제 무기나 [[총|불을 뿜는 막대]], 타고 다니는 [[말|괴상한 짐승]] 등에 대한 정보가 황제에게 전해질 때마다 몬테수마 2세가 이들에 대해 느끼는 위협과 공포심은 커져만 갔다. 비록 머릿수는 적을지라도 아즈텍인의 눈에 콩키스타도르들은 약점 따위는 없어보이는 무적의 군대처럼 보였다. 베라크루스를 건설하면서 잠시 시간을 보내던 코르테스에게 몬테수마 2세가 보낸 사절이 와, 금을 선물하며 전쟁을 피하자는 의사를 전달했다. 이때 '''이 사절들은 코르테스를 신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르테스는 더 많은 금을 원한다며 사신을 모욕적으로 대했고, 콩키스타도르들이 가진 화약 무기의 위력을 과시하며 쫓아냈다. 이후 두 번째로 온 사절은 더 많은 금을 선물로 건네며, 코르테스를 테노치티틀란으로 초대했다. '''하지만 [[테노치티틀란]]으로 가는 길에, 코르테스는 수많은 공격을 당했다.''' 적대 부족과 싸움을 붙여 이들을 공멸시키려는 몬테수마 2세의 계획이었는지, 아니면 단지 아즈텍의 통솔력이 미치지 않았던 것인지는 몰라도, 어떤 [[아메리카 원주민|원주민]]들은 환대하는 반면 어떤 원주민들은 다짜고짜 기습하기 일쑤였고, 그 중 가장 위험했던 것은 [[틀락스칼텍]]인들과의 전투였다. 하지만 이후 틀락스칼텍인들은 아즈텍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자 코르테스의 충실한 동맹이 되었다. 처음 [[틀락스칼텍]]인들은 스페인인들이 아즈텍인들처럼 자신들을 잡아먹을 거라 생각해 죽어라 저항한 것이었는데 [[스페인인]]들이 자신들은 [[로마제국]] 시절부터 [[인신공양]]과 [[식인]]이 엄격히 금지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라고 설득해서 화해를 하게 되었다. 다시 서쪽으로 향하던 코르테스는 평소보다 많은 아즈텍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는 아즈텍의 동맹도시 촐룰라에 도착했다. 코르테스는 여기서 물자를 보충할 계획이었지만, 촐룰라가 이상할 정도로 요새화되어 있는 것을 경계한 휘하 틀락스칼텍인들은 반대했다. 또한 몬테수마 2세의 사절이 말했던 바와는 달리, 도시의 지도자는 코르테스를 환영하러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 말린체가 코르테스에게 촐룰라는 사실 스페인인들이 잠든 틈을 타서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하자, 코르테스는 그 의견을 받아들여 더 이상 확인 같은 건 하지 않고 촐룰라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고, 이는 '''촐룰라 학살'''로 이어지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코르테스의 기록이다. 틀락스칼텍인들은 자신들의 사신이 촐룰라에 갔다가 고문받은 것에 대한 복수를 코르테스가 해 줬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아즈텍은 틀락스칼텍인들이 코르테스를 부추겼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즈텍에 대한 틀락스칼텍인들의 증오를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